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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숲속의 물레방아
우리가 아마도 중학교 2학년 말 때 쯤 음악 과목을 담당하신 김순용 선생님은 울적할 때 가끔 부르신 노래가 있었다. 선생님이 작시, 작곡한 듯한 노래다. 선생님 당신 자신이 직접 말해준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는 6.25 전쟁 전에 부중 음악교사였다고 한다. 전쟁이 발발하자 고향으로 천신만고를 겪으며 가시다가 인민군에게 붙잡혀서 의용군이 되셨다고 한다. 국군의 진격으로 그는 포로가 되어 얼마동안 포로수용소에 계시다가 신원이 확인되어 석방되셨다고 한다.
훈풍이 불어오는 청댓잎 숲 속에
물레방아 돌아가는 한적한 산길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향기로운 딸기 꽃만 곱게 피었네.
나는 우리나라에 대나무 숲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더구나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산골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추측하기로는 전남 어느 지방에는 이런 곳이 있을 것 같다. 선생님의 고향이 그 곳이고 포로에서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문득 시상이 떠오르고 곡도 지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여 본다. 포로생활을 하다가 자유의 몸이 되고 고향으로 가는 길가에는 낯익은 물레방아는 전처럼 돌아가는데 포로생활에서의 겪은 설음과 말못할 사정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루 형언 할 수가 없었으리라. 그러기에 그의 음악적 재질로 이를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쟁과 고생으로 나이가 들어 보이는지는 몰라도 선생님은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로 보여 군대에 들어갈 나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선생님이 의용군으로 가야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 많은 예술분야에 있던 인사들처럼 그도 막연히 공산사상에 다소 물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얼떨떨하게 의용군으로 전입되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 사정도 모르면서 이렇게 쓰는 것이 선생님께 누가 되었다면 이런 상상은 어디까지나 필자가 만들어낸 공상임을 밝혀 둔다.
그런데 그 당시 많은 남쪽의 인사들이 북으로 가면서 선택의 길이 있었다고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지용 시인이다. 향수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 시인은 한번 전향한 이력이 있었다. 6.25 가 나자 번민 끝에 보도연맹을 찾아가 다시 전향했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48세) 의용군이라기보다 노무자로 낙동강 전투에 참여 했다가 포로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북으로 가다가 폭격으로 요절 했다는 설도 있다. 어떻든 그는 더 이상 변절하고 싶지 않았던지 특별히 가야될 처지도 아니면서 북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순간적으로 결정한 선택이 아니었을가 판단해 본다.
이렇게 우리는 한 순간의 판단으로 일생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후회 하는 일도 많게 된다. 때로는 편견과 무지로 때로는 감정으로 때로는 평소 품었던 소신으로 때로는 다른 선택이 없어 순간에 결정하는 일이 많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보다 정확한 사태 파악과 소신으로 결정하는 것이지만 말로는 쉬워도 정작 결정을 내릴 때는 어려운 일이다.
내가 아는 분의 형님은 6.25 때 경기 중학교 6학년이었다고 한다. 그는 큰 형님의 (당시 서울 의대 강사) 영향을 받아서인지 공산사상에 물들어 교내에서 좌익 활동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학교의 좌익 그룹의 간부였던것 같다. 전쟁이 나자 곳 의용군으로 입대하여 전투에 참여하였다가 포로가 되었다. 그는 잘사는 부농의 아들이었지만 년노하신 부모는 돌아가시고 집안도 기울어지는 상태였다고 했다. 이북으로 들어가는 기차가 서울 근교에서 머무를 때 몇번이나 뛰쳐 내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대도 그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북으로 갔다.
북에서 그는 큰 폭발 사고에서 인명을 구출하고 사고를 당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그래서 큰상을 받고 덕분에 김일성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고 했다. 거기서 형을 만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아마도 출신성분 때문인지 형은 김일성 대학 의학부에서 함흥으로 전출되고 동생은 청진의 한 진료실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서울에 남은 동생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개업을 하다가 은퇴하였다.
그가 형들을 찾아 북으로 갔을 때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곳 가족의 누대가 이어졌고 어느날 같이 방에서 잘 때 비로소 자기 얘기를 나눌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 때 왜 선택이 있었는데 북으로 가려든 마음을 접지 못하였는지 후회하는 눈빛이었다고 한다, 큰 형님은 좌천 되었지만 의학에 대한 열정은 식지가 않아 늘 의학 잡지를 미국에서 보내 주었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한 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택도 운명이러니 하고 받아드리는 태도는 동양적인 사고방식일까? 그러나 오늘 날에서는 잘못된 선택이라면 늦더라도 이를 시정 할 수가 있고 이를 선호한다. 아마도 이런 이유가 늦게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기도 하고 늦게 이혼을 하기도 한다. 물론 자유가 없는 북한사회에서는 그 것마저 없지만 어느날에는 이런 선택의 자유가 생기는 날이 올것임은 의심하지 않는다.
대나무 숲을 이룩하려면 많은 물이 필요하다. 대나무는 하늘을 향하여 위로 올라간다. 흘러가는 물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물레방아를 돌아가게 한다. 대나무나 물이나 한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물레방아는 선택권이 있다. 전기를 만들려면 발전기를 돌리면 되고 떡방아를 찧게 하려면 기아장치를 쓰면 되고 물을 높은 곳으로 올리려면 회전 두레박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선택의 자유가 없을 때 물레방아 같은 기구를 만들어 조건을 바꾸어 보고 이를 이용하는 것이 하나의 전환의 방법이 될 수가 있다.
김순용 선생님이 고향 길에서 빽빽히 하늘을 향해 올라간 대나무 숲 가운데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정경을 보고 문득 방향을 바꾸어 옛 직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셨는지 누가 알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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